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르마 그레제 (문단 편집) === 나치당 가입 === 독일의 북부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에서 평범한 농부의 다섯형제 중 셋째 딸로 태어난 이르마는, 13살 때 어머니가 일찍 자살하여 동생들과 함께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어머니 베르타는 이르마의 아버지 알프레트 그레제가 인근 주점 주인의 딸과 불륜 관계임을 알고 [[염산]]을 마시고 자살했다. 이후 15살에 이르마는 이상행동을 보여 학교 내에서 [[왕따]]를 당하여 학교를 자퇴하였다. 말이 없던 그녀였지만 당시 [[독일]]을 강타하고 있던 [[나치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무렵 아버지 알프레트도 1937년에 나치에 입당했단 설이 있다. 1939년엔 아버지가 재혼했다. 1938년부터 이르마는 농장과 매장 일 등 다양한 직업을 하다가 아버지의 권유로 [[의학]] 공부를 했고, 1940년에 독일이 여성보조대원제도란 이름으로 여군 (군복과 계급만 있는 [[군무원]]에 가까웠다) 제도를 도입함에 따라 [[슈츠슈타펠]]의 SS 부상병 요양캠프의 간호보조원으로 들어가 2년간 복무를 하였다. 그녀는 그곳의 일을 즐거워 하였다. 그러나 이르마는 번번히 시험에 떨어져 정식 [[간호사]]가 될 수 없었고, 얼마 안 가 간호사를 포기하고 간수가 되기로 한다. 그리하여 나치당에 가입하고 여간수학교에서 수업을 받은 후, 레벤스르북 강제 수용소 임무를 자원하게 되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반나치주의자로서 딸이 수용소 임무를 지원하는 것을 극구 반대했으나, 그녀는 이에 굴하지 않고 라벤스브뤽(Ravensbrück)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다른 여간수들처럼 교육을 받은 후 1943년 3월에 그들의 주 근무지인 [[아우슈비츠]]로 이동하였다. 당시 신참 여간수들은 이곳에서 교육을 받아 아우슈비츠로 향했는데, 대부분의 신참 여간수들은 배급과 생활환경 면에서 이곳을 더욱 선호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